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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작전] 6.25 최초의 공수작전 " 숙천 순천 공수차단작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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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0lDBK613 작성일19-05-17 16:07 조회1,1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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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적은 패스파인더에 이어서 공수작전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6.25 전쟁 당시 실시된 공수작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숙천 순천 공수차단작전


때는 1950년 10월 1일 


국군 3사단 23연대가 최초로 38선을 돌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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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9일 


UN 군이 대대적인 북진을 실시.


* 국군은 10월 9일 당시 원산까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 10월 9일에 UN군이 북진을 실시한 이유로는 소련이 결의안을 부결하였기 때문입니다.


10월 19일 


국군 1사단이 최초로 평양에 진입.


당시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전투보다는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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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

 
맥아더는 김일성과 북한 수뇌부, 주력부대 대부분이 평양에서 멀리 도주하지 못했을 것이라 판단하였고


퇴로를 차단하려 합니다.


뿐만 아니라 후방으로 후송되고 있을 연합군 포로들을 구출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죠.


부대를 빠르게 투입시키기 위해 


김포비행장에 대기하고 있던 제 187 미 공수연대전투단을 공수하기로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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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동공군사령부의 유일한 예비대였던 미 제 187 공수연대전투단
(공수연대보다 전력이 강화되어 전투단이라는 명칭을 가집니다.)

> 인천상륙작전에서는 상륙부대의 측면을 보호하기 위해 투입되었었고 현재는 101공정사단에 배속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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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187 공수연대전투단의 지휘관 보웬 대령

Video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공수작전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지형, 날씨, 적군의 위치, 주변 부대와의 연결, 병참선 등을 따져야 하기에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지휘부 또한 여러 조건을 따져보아야 했죠.


지리적 조건 면에서는 평양에서 만주로 이어지는 두개의 퇴로를 동시에 차단하여야 하며,


시간적인 면에서는 지상에서 평양으로 진격중인 미군부대와 연결이 가능하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상부대인 미 8군의 대동강 도하와 군수지원 등 여러 상황을 보았을 때


평양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인 숙천과 순천을 강하지역으로 결정합니다.


작전계획은


1. 공수연대의 주력은 숙천에, 일부는 순천에 투하되어 퇴로를 차단


2. 강하시기는 미군의 평양 돌입과 기상 등을 통해 판단.


3. 강하 후 2~3일 후에 지상군과의 연결을 실시.


4. 포위된 적군을 격멸하고, 김일성과 수뇌부를 포로로 잡고, 연합군 포로를 구출한다.


작전계획과 동시에 미 제 24사단이 숙천으로 진격하도록 하는 한편, 


로저스 특수임무부대와 국군 제 6사단은 순천으로 진격하게 하면서 공수작전을 위한 밑거름을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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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작전 계획 

> 윌리엄 지역이 숙천, 이지 지역이 순천 입니다.

> 그림과 같이 완전히 포위하여 조질 생각이었죠.



10월 20일 12:00


보웬 대령의 공수연대 4220명이 105mm 곡사포 12문 등 각종 장비를 가지고


c-119 박스카와 c-47 등 119대의 수송기에 탑승하여


김포비행장을 이륙, 서해안을 따라 북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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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119 수송기의 모습입니다.


> 특이한 외관덕에 박스카라고 불립니다. 


10월 20일 14:00 


주 전력인 연대 본부와 지원부대, 1대대, 3대대 병력이 숙천에 강하를 성공합니다.


* 다행히도 북한군이 후퇴하는 중이라 대공포사격을 받지 않습니다.


강하에 성공한 1대대와 3대대는 적은 수의 적군을 물리치고 목표지역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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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강하 모습과 187 공수연대원들의 모습입니다.


10월 20일 14:20


2대대가 순천 지역에 낙하하엿고 적의 저항없이 목표지역을 완전 장악합니다.


2대대 예하 1개 중대가 순천으로 북진 중인 국군 6사단 예하부대와 접촉에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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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보면 지릴꺼같은 공수작전 당시 사진입니다.

>  국군의 날 행사에서 하는 특전사의 집단강하 시 저런 장면을 볼 수 잇습니다. 



10월 21일 


만주로 가는 주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감시가 가능한 고지를 확보하였고


순천의 2대대와 부대간 연결이 성공합니다.


한편 맥아더는 공중에서 공수작전 현장을 직접 확인한 뒤


평양으로 돌아와 기자회견에서 작전 성공을 자신합니다.


" 적의 의표를 찔러서 공수작전을 감행했다. 

북한군 전병력의 반으로 판단되는 3만명이 평양의 미 1기병사단과 국군 1사단, 미 187 공수연대전투단 사이에 포위됐다.

적이 택할 길은 전멸하느냐, 항복하느냐의 두 가지 밖에 없다. 

이 작전은 명인의 솜씨라고 할 만한 것이며 끝내 적을 함정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 


다운로드.png [군사작전] 6.25 최초의 공수작전 " 숙천 순천 공수차단작전 "


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은 성공적으로 작전이 끝나고 했어야 했습니다.


이미 김일성과 수뇌부, 주력부대는 공수작전이 실시되기 전 


숙천과 순천으로 철수하여 청천강을 건너갔고, 포로들 또한 그 이전에 북쪽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결국 공수작전은 성공적이었지만 그 이후 달성할  중요 목적은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 그럼 김일성과 수뇌부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편찬한 ' 6.25 전쟁사 ' 7권에서 


" 스탈린의 탈출 지시가 있었던 10월 13일 밤, 이미 김일성은 평양을 벗어낫을 것" 


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숙천에 강하한 3대대는 포위된 적군을 격멸하기 위해


평양으로 남진하였는데 


13:00시 경 I 중대가 적의 공격을 받아 두시간 반동안 전투 끝에 


2개 소대가 격파되고 90명의 실종자를 내는 손실을 입게 됩니다.


또한  K 중대가 1개 대대규모의 적과 조우.


적이 후퇴하자 적을 추적하였지만 


이들은 평양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한 제 239연대의 2500명이었습니다.


* 평양을 잃은 김일성은 연합군의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일부 부대를 배치하였는데 그 때 남아있던 부대입니다.


22일 새벽까지 3대대 본부와 K, L 중대가 많은 사상자를 내며 고전하였지만


미 제 1군단의 전면적인 진격작전이 시작되어 


영국 27여단 예하 1대대, 호주 3대대의 구원을 받아 숙천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187공수연대전투단은 10월 23일 작전 개시 3일만에 평양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실시된 숙천 순천 공수작전에서 제 187 공수연대는 65명의 사상자를 내었습니다.


또한 3,818명의 포로를 잡았으나 예상했던 15,000명의 포로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즉 공수작전은 성공적이었으나, 잘못된 정보와 안일한 판단을 바탕으로 


실시된 차단 작전은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여기서 몇가지 더 뒤에 일어난 일들을 얘기해보면


유엔군 입장에서 공수작전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았습니다.


10월 24일 국군 1사단이 영변을 점령하였고, 맥아더가 북한군 총추격 명령을 하달하면서


작전제한 없이 북진을 허용했습니다.


맥아더는 11월 추수감사절 이전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 장담했고, 


실제로도 군수지원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햇습니다.


하지만 지휘부의 여유와 달리 전선 부대의 보급망은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고


국군 병력의 상당수는 추위가 시작됐음에도 하계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곧 끝날 것처럼 보였기에 미군과 유엔군 지휘부는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10월 25일 08:30 시 


국군 1사단 예하 12연대와 15연대가 대규모 적병력을 마주칩니다.


마찬가지로 국군 6사단 주변에도 정체불명의 대규모 부대가 나타납니다.


국군과 연합군 모두가 피하려 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순간이었죠.

Video 태그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입니다.


출처 


전쟁기념관 - 숙천, 순천 공수작전

국방 일보 - [다시 쓰는 6.25 전쟁] 숙천 순천 공수작전








원래 생각대로면 이주일에 한편씩 써보려했는데 정규직 전환 문제로 스트레스 받아서 글을 제대로 못썻습니당 ㅠㅠㅠ


 다행히 정규직으로 전환되서 홀가분하게 글 다시 썼네요 ㅠㅠㅠ


일단 이렇게 끝을 냈는데 중공군 참전 초기 미군과 국군의 상황을 담편으로 할지 생각중입니다. 


[군사작전]


https://www.fmkorea.com/1209277328


신과조국을위하여 "넵튠스피어작전" 1 - 3


https://www.fmkorea.com/1204511300


아프간 최악의 참사 "레드윙 작전" 1 - 3


https://www.fmkorea.com/1201057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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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mkorea.com/1217583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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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mkorea.com/1255287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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